물속에서 진화한 여성들… 제주 해녀, 유전자도 바다를 닮았다

차가운 바다에서 숨을 멈추는 그들, 이제 과학도 해녀를 주목한다
최현서 기자 2025-05-03 11:35:20
▲사진=Melissa Ilardo

찬 바닷속에서 숨을 참고 해산물을 채취하는 제주 해녀. 수백 년을 이어온 그들의 삶이 단순한 전통을 넘어, 과학적으로 ‘진화된 인간’임을 입증하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최근 국제 공동 연구진은 제주 해녀들에게 ‘잠수에 특화된 유전자’가 존재하며, 이 유전적 특성이 제주 여성 전반에도 퍼져 있다는 사실을 세계적인 학술지 Cell Reports에 발표했다.
 
훈련만으론 설명 안 되는 능력
미국 유타대학교 멜리사 일라르도 교수팀은 제주 해녀 30명과 비해녀 제주 여성 30명, 한반도 본토 여성 31명을 비교했다. 평균 연령은 65세. 참가자들은 얼굴을 찬물에 담근 채 숨을 참는 ‘모의 잠수’ 실험에 참여했다.

그 결과, 해녀들은 잠수 직후 평균 심박수가 18.8회 줄며 강력한 산소 보존 반응을 보였다. 비해녀 집단의 감소폭(12.6회)보다 현저히 컸다. 일부 해녀는 단 15초 만에 심박수가 분당 40회까지 떨어졌다. 연구진은 “이는 단순한 숙련이 아니라 생리적 적응의 결과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바다 체질’로 진화한 제주 여성
더 놀라운 발견은 유전자였다. 해녀뿐 아니라 제주 출신 여성 전체에서 두 가지 특징적인 유전자 변이가 공통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1. 추위에 강한 내성 유전자
2. 이완기 혈압을 낮추는 유전자 (제주인 33% 보유 / 육지인 7%)
연구진은 “이 변이들은 찬물 속 장시간 잠수에 유리하게 작용하며, 특히 혈압 변이는 임신 중 고혈압성 질환 위험을 낮추는 데도 기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해녀의 삶, 유전자를 바꿨다
특기할 점은, 해당 유전자들이 실제 해녀가 아닌 일반 제주 여성에게도 나타났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수백 년간 이어진 해녀의 활동이 지역 유전자 풀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이 크다”며 “이는 제주라는 땅에 새겨진 문화적 진화의 흔적”이라고 밝혔다.

멜리사 일라르도 교수는 “해녀는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한 지역의 건강과 유전체에까지 영향을 미친 존재”라며 “이번 발견은 고혈압, 임신성 질환, 심혈관 질환 연구에 새로운 단서를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유산은 전통이 아니라 진화다
제주 해녀는 2016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세계 유일의 여성 해양 잠수 집단이다. 임신 중에도 물질(잠수 작업)을 멈추지 않으며, 한겨울에도 맨몸으로 바닷속을 누빈다.

이번 연구는 그들의 생존 방식이 단순히 숙련의 결과가 아닌 진화의 방향성이었다는 과학적 증거를 제시한다. 고요한 바닷속, 해녀들은 인간이 환경에 적응해온 위대한 흔적이자, 유전자의 또 다른 진화를 써 내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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