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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으로 핀 마음, 산길 위에서 나를 만나다 [고홍곤의 야생화 에세이]

참나리와 말나리, 산에서 만난 두 가지 인생의 교훈
고홍곤 야생화 사진작가 2025-08-18 16: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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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의 노래에 귀 기울이며 구름의 춤사위와 춤추는 하늘과 맞닿은 참나리꽃의 꿈ᆢ #대둔산 참나리 

야생화를 촬영하는 사진작가로서 종주를 하며 산을 오르는 것은 단순히 정상을 향해 나아가는 행위가 아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새로운 자연과 꽃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살아있는 책과 같다. 설악산, 지리산 등 대자연이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한때는 남의 이야기로만 가득했던 내 삶에, 산은 비로소 나만의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산의 분신인 꽃들은 험한 바위틈이나 깊은 산중에서도 피어나며, 작은 꽃 한 송이에도 그 아름다움은 깃들어 있다.

이렇게 산에서 만나는 많은 나리꽃 중에서도 참나리와 말나리는 특히 인상 깊다. 나리꽃은 보통 6월에서 8월 사이에 피는 백합과 여러해살이 식물로, 같은 나리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전혀 다른 매력을 품고 있다.

참나리는 꽃잎이 뒤로 말려 올라가 마치 파마한 듯 유쾌한 모습이다. 꽃은 아래를 향해 피고, 줄기 잎겨드랑이에 '주아'라는 작은 알갱이가 달려 있어 이를 통해 번식한다. 꽃잎에 검은 반점이 호랑이 무늬처럼 박혀 있는 것도 큰 특징이다. 꽃말은 '나를 사랑해주세요'이다. 나는 이 참나리를 대둔산 마천대 정상에서 만났다. 새벽 4시, 가파른 등반 끝에 만난 험한 바위산의 참나리는 당당하게 자신을 드러내며 환하게 웃어주는 그 모습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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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은 산속 주홍빛 세례 가득 신의 분신, 꽃의 자태에 영혼이 맑아지는 #말나리


반면, 말나리는 꽃잎이 옆으로 깔끔하게 뻗어 마치 숏커트처럼 단정한 느낌을 준다. 주아가 없고, 줄기 중간에 잎이 돌려나는 특징이 있다. 꽃말은 '순진'이다. 시간의 흐름을 잠시 잊은 채 설악산 대청봉 가는 길목에서 만난 말나리는 화려하지 않아도 묵묵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깊은 산중에서 고요히 주홍빛 세례를 가득 받는 모습에 내 영혼도 맑아지는 듯했다. 당장의 성취에 연연하지 않고 자연의 순리 속에서 나의 본질을 찾고자 하는 내 모습이어야 한다는 깨달음을 주었다.

산에서 만나는 야생 나리들과 달리, 정원의 나리들은 원예용으로 개량된 오리엔탈 나리나 아시아틱 나리 품종이다. 이들은 크고 화려한 꽃을 자랑한다. 여러 이유로 바쁘기도 하지만 남이 심어 놓은 아름다운 꽃을 보는 것보다 직접 씨앗을 뿌려 꽃을 가꾸는 과정에서 기다림 속에 더 큰 기쁨을 느껴보면 좋겠다. 그 눈길이 곧 스스로를 바라보는 길이기에 베란다나 화단에 직접 씨앗을 뿌리고, 싹이 나고, 꽃이 피고, 다시 씨앗을 맺는 모든 과정을 지켜보며 많은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으리라.

야생의 꽃들은 누가 보지 않아도 서툴게 피지 않으며, 서로 싸우거나 화내지 않는다. 큰 산의 침묵처럼 그저 고요함 속에서 자신의 빛깔과 향기를 기꺼이 내어준다. 마침내 꽃씨로 만다라 같은 마침표를 찍으며 한 생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는 모든 과정은 우리 삶의 중요한 길잡이가 되어준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꽃에게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아닐까?

대둔산 정상의 참나리가 나 스스로를 사랑할 용기를 주었다면, 설악산의 말나리는 겸손한 마음으로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는 지혜를 가르쳐 주었다. 한때 남의 눈을 의식하며 살아가던 나는 이제 비로소 나 자신을 위한 아름다움을 찾아가고 있다. 그 길 위에서 만나는 꽃들은 단순한 식물이 아니라, 나의 삶을 이끌어주는 소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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