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초(福壽草)는 자주 오해를 받는다. 원수에게 복수(復讐)한다고 할 때의 그 '복수'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복 복(福) 자에 목숨 수(壽) 자를 쓰는 이 꽃은 복과 장수를 기원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른 봄, 아직 겨울의 냉기가 채 가시지 않은 2월부터 4월 사이에 어김없이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는 복수초는, 겨울의 차가운 눈과 언 땅을 온몸으로 녹이며 솟아오르는 강인한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2018년 3월 중순, 나는 서해의 작은 섬 풍도를 가기 위해 새벽부터 안산 방아머리항으로 향했다. 풍도는 섬 곳곳에서 야생화를 만날 수 있는 ‘야생화 천국’이다. 항구엔 안개가 짙었다. ‘오늘은 어떤 꽃들을 만날까?’ 설렘을 안고 안개가 걷히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침을 지나 정오를 넘겨도 배는 출항하지 않았다. 이미 마음은 섬을 향해 있어서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 나는 김밥 한 줄로 허기를 달래며 반대 방향으로 두 시간을 달려 양평의 깊은 산자락, 세정사 계곡으로 향했다. 복수초와 봄의 전령 바람꽃들은 주로 높고 깊은 산의 6, 7부 능선에서 자란다. 애초에 쉽사리 만날 수 없는 꽃이기에 기대가 더욱 컸다.
2시부터 계곡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이른 봄, 산 그림자는 4시 반이면 내려앉는다. 해가 지면 발밑의 작은 꽃들을 사진으로 담기 어려워지기 때문에 나는 서둘렀다. 한 시간 가량을 오르자 땀이 흘렀다. 숨이 차올랐다. 잠시 걸음을 멈춰 섰다. 차가운 바람 한 점이 나를 휘감았다. 그 순간, 등이 뜨거웠다. 뒤를 돌아봤다. 눈이 녹아 얼은 바위 틈 얼음 사이로 샛노란 봄이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복수초였다. 볕도 들지 않는 산의 음지에서 피어난 노란 복수초. 마치 보물을 발견한 듯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나는 한참 동안 마치 감전된 듯 그 꽃을 넋 놓고 바라봤다. 척박한 환경에서 끝내 피어난 그 작은 꽃은, 모진 추위를 이겨낸 강인한 생명력 그 자체였다. 그 귀한 에너지를 담기 위해, 나는 1시간이 넘도록 수백 장의 셔터를 눌렀다. 오직 그 '별의 순간'을 온전히 담아내기 위해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 양평 세정사 계곡에 핀 복수초
노란 복수초는 오랫동안 내 삶의 스승이자 친구였다. 힘들 때 말을 걸면, "나는 그 모진 추위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끝내 꽃을 피워냈단다. 너도 해낼 수 있어. 포기하지 마"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것을 ‘백만 볼트의 희망 발전소’라고 이름 붙였다. 강추위를 이겨내며 꽃을 피운 복수초 뿌리의 힘은 내 삶의 원동력이 되었고, 삶이 비록 고단해도 절망하지 않으면 언젠가 꽃으로 피어날 수 있다는 용기가 되었다.
삶의 길목을 묵묵히 걸어가다 보면, 때로는 예상치 못했던 곳에서 희망을 발견하게 된다. 신이 숨겨놓은 듯한 그 귀한 순간은, 오직 깨어있는 마음일 때 비로소 우리에게 모습을 드러낸다.
-고홍곤 (야생화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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