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날 미사는 새벽부터 운집한 신자들과 세계 각국 지도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엄숙하게 진행됐다. 레오 14세는 미사 시작 전, 하얀색 전용 차량 ‘포프모빌’을 타고 성 베드로 광장과 인근 ‘비아 델라 콘칠리아치오네’ 대로를 돌며 신자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아기를 들어 축복하거나 신자의 머리에 손을 얹는 장면이 곳곳에서 포착되며 ‘한 분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그의 사목 표어를 상기시켰다.

미사 중에는 가톨릭 전통에 따라 교황의 권위를 상징하는 ‘팔리움’과 ‘어부의 반지’를 착용하는 의식이 진행됐다. 양모로 만든 팔리움은 길 잃은 양을 찾아 나서는 선한 목자의 사명을, 어부의 반지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교황직의 정통성을 상징한다. 레오 14세는 반지를 낀 손을 잠시 응시한 뒤 하늘을 올려다보며 교황직의 무게를 되새기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강론에서 그는 “오늘날 우리는 증오, 폭력, 편견, 차이에 대한 두려움, 자원의 남용과 가난한 이들의 소외 등으로 인한 깊은 상처를 마주하고 있다”고 말하며, “교회는 통합과 사랑의 정신으로 이 시대의 고통을 보듬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어 “차이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는 일치를 통해 모두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3시간 넘게 이어진 즉위 미사에는 200여 개국에서 온 정부 대표단과 종교 지도자들이 참석했다. JD 밴스 미국 부통령,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등 주요 인사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한국에서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한 경축 사절단이 참석했으며, 염수정 추기경, 이용훈 주교 등 천주교 지도자들도 자리를 함께했다.
레오 14세는 미사 후 성 베드로 대성전으로 이동해 각국 대표단과 인사를 나누며 감사의 뜻을 전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전임 프란치스코 교황을 언급하며 “그분이 오늘도 천상에서 함께하고 계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레오 14세는 전임 교황의 사회 정의와 약자 보호에 대한 가치를 계승하면서도, 가톨릭 전통을 중시하는 보수적 입장을 아우르려는 메시지를 분명히 했다. 그는 “교회의 역할은 결코 정치적 지배나 종교 선전이 아닌, 사랑과 포용, 화해에 있다”고 재차 강조했다.

그는 과거 20년 이상 페루에서 선교사로 활동하며 깊은 유대감을 쌓은 이력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날 성 베드로 광장 곳곳에는 미국과 페루 국기가 나란히 휘날렸고, 세계 각국에서 찾아온 신자들로 광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로마 당국은 약 5천여 명의 경비 인력을 배치하고 드론 감시, 헬리콥터 순찰 등을 통해 행사장 전역의 안전을 철저히 관리했다.
레오 14세 교황은 즉위 미사를 통해 가톨릭 교회의 새 시대를 열었으며, 분열과 갈등의 시대에 ‘하나 된 교회’와 ‘화해의 세계’라는 비전을 선포하며 첫걸음을 내디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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