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이들의 벗’ 프란치스코 교황, 전 세계 애도 속 마지막 길에 오르다

최현서 기자 2025-04-26 19:49:37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26일(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되고 있다. (사진=AP, 연합뉴스)

프란치스코 교황의 장례 미사가 26일 오전 10시(현지시간)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엄숙하게 거행됐다.

장례 미사는 교황의 시신을 담은 십자가 문양의 목관이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광장 제단으로 운구되면서 시작됐다. 입당송 ‘주여, 영원한 안식을 내리소서’가 울려 퍼진 뒤, 기도와 성경 낭독이 이어졌고, 추기경단장 조반니 바티스타 레 추기경이 강론을 맡았다. 성찬 전례와 고별 의식에서는 관에 성수를 뿌리고 분향하는 순서가 진행됐다. 미사 종료 후 광장을 가득 메운 신자들은 “즉시 성인으로!”(Santo Subito!)를 외치며 교황을 추모했다.

▲사진=AP, 연합뉴스

이날 장례 미사는 레 추기경의 주례로 전 세계 추기경과 주교, 사제들이 공동 집전했다. 교황의 관 안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리 형태의 띠)과 프란치스코 교황 재위 기간 발행된 동전과 메달, 주요 업적을 기록한 두루마리 문서가 함께 봉인돼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생전에 소박한 장례를 원하며 삼중관 대신 아연을 덧댄 단일 목관 사용을 지시했다. 안장지는 전임 교황들이 묻힌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가 아니라, 평소 자주 찾았던 로마 테르미니역 인근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성모 대성전)으로 정해졌다. 교황이 바티칸 외부에 안장되는 것은 1903년 레오 13세 이후 122년 만이다.

성 베드로 대성전과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은 약 6km 떨어져 있다. 운구 행렬은 시민들이 마지막 인사를 전할 수 있도록 느린 걸음으로 이동했으며, 관은 이날 오후 2시에서 2시 30분 사이에 장지에 도착할 예정이었다. 교황은 대성전 벽면 안쪽 움푹 들어간 공간에 안장되며, 흰 대리석 받침에는 라틴어로 ‘프란치스쿠스’라는 이름만 소박하게 새겨진다.

▲성 베드로 광장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부부 (사진=AP, 연합뉴스)

장례 미사에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연합(EU) 집행위원장을 비롯해 약 60명의 국가 원수와 군주, 130여 개국 대표단이 참석했다. 한국 정부는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민관 합동 조문 사절단을 파견했다. 오현주 주교황청 대사와 안재홍 천주교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이 동행했다.

교황청은 이날 미사에 약 20만 명이 참석했다고 밝혔다. 앞서 23일부터 사흘간 열린 일반 조문 기간에는 약 25만 명이 성 베드로 대성전을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신은 전임 교황들과 달리, 허리 높이 관대 없이 바닥에 가까운 낮은 목관에 안치돼 조문객을 맞았다.

장례 미사를 기점으로, 오는 5월 4일까지 성 베드로 광장에서는 ‘노벤디알리’(9일 애도 기도회)가 매일 이어진다. 교황의 무덤은 27일부터 일반에 공개된다.

한편, 후임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추기경 비밀회의)는 5월 5일부터 10일 사이에 열릴 예정이다. 만 80세 미만 추기경 135명이 참가하며, 첫날 오후 한 차례, 이후 매일 두 차례씩 투표를 진행한다. 전체 선거인의 3분의 2 이상을 득표하는 후보자가 나오면,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서 흰 연기가 피어오르며 새 교황의 선출을 알리게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21일 오전 7시 35분, 뇌졸중과 심부전으로 선종했다. 1936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태어난 그는 2013년, 1,282년 만에 비유럽권 출신으로 교황에 선출됐다. ‘빈자의 성자’로 불린 성 프란치스코의 정신을 따르며 청빈과 사회적 약자 보호를 강조했고, 동성 커플에 대한 축복을 허용하는 등 교회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교황으로 평가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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