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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주란의 향기와 언어의 고결함 [고홍곤의 야생화 에세이]

문주란의 향기, 언어의 고결한 품격과 닮아
뿌려 놓은 말의 씨앗의 무게를 느끼고, 서로에게 향기 나는 언어로 격려해야
고홍곤 야생화 사진작가 2025-10-27 18:23:31

▲생각만해도 따뜻한 당신의 말씀
   내 영혼을 환히 밝혀주지
   아ᆢ 고마운 당신


바닷가 모래톱을 가로지르는 시원한 해풍 속에서 홀로 피어나는 야생 문주란의 향기는 가히 환상적입니다. 수선화과에 속하며 '청순', '고결', '순수한 마음'의 꽃말을 지닌 문주란은 짠내 섞인 바람을 뚫고 닿는 그 깊고 달콤한 기품으로, 지친 영혼을 환하게 밝혀주는 꽃등과 같습니다. 문주란이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는 향기를 아낌없이 내어주듯, 우리는 이 고결한 꽃의 향기에서 일상 속 말 한마디의 장점과 폐해라는 언어의 본질을 발견합니다.

 

삶의 온갖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고 스스로의 고결함을 지켜내는 문주란의 뿌리처럼, 인간에게는 타인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자존심'이라는 고귀한 영역이 있습니다. 문주란의 향기는 바로 그 견고한 자존심을 존중하고 지켜주는, 언어의 가장 고결한 자세를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때때로 무심코, 혹은 알면서도 여러 이유로 타인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말을 구사합니다. 말을 하는 사람은 "나는 이 정도이겠지" 하고 무심히 치부할지라도, 상대는 평생 깊은 상처를 안고 살아갑니다. 상대방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단 한마디는 그동안의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며, 평생 상대를 찌르는 가시이자, 관계의 뿌리를 흔들어 버리는 비수입니다. 특히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들 사이에서 입는 상처는 상상하기 힘들 정도로 아픕니다.

▲따뜻한 미소의 말 
   세상을 모두 녹이듯ᆢ

우리는 이해인 수녀님의 '말을 위한 기도' 글을 통해 말의 엄중한 무게를 묵상합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 무심코 뿌려 놓은 말의 씨앗이 어디서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열매를 맺었을지 조용히 헤아려 볼 때, 그 책임감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더러는 허공으로 사라지고, 더러는 다른 이의 가슴 속에서 좋은 열매 또는 언짢은 열매를 맺었을 언어의 나무를 다시 곱씹어보는 것은, 말 한마디에 대한 귀하고 엄숙한 성찰입니다.

▲지치고 외로울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도록 속마음 한켠을 내어주는 꽃들의 위로처럼ᆢ

수녀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문주란이 고운 향기를 아낌없이 내어주는 순수한 마음을 실천해야 합니다. 서로를 존중하고 아껴주는 언어로 관계를 맺으며, 한마디 말을 내뱉을 때 굉장히 조심해야 합니다.

언제든 생각만 해도 힘을 주는 격려와 정서적 지지의 말 한마디는 온 마음을 따뜻하게 밝혀주고, 이 힘든 세상을 이겨나갈 수 있는 강력한 동력입니다.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기도 하지만, 말 한마디의 실수로 관계의 공든 탑을 산산조각 내는 우를 범해서는 결코 안 됩니다.

우리 서로가 두고두고 생각해도 향기 나는 말로 이 험한 세상을 든든하게 헤쳐 나갈 수 있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 모두 "나날이 새로운 마음, 깨어 있는 마음 그리고 감사한 마음으로 내 언어의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해처럼 환히 빛나는 삶 속에서 말 한마디로 상대를 일으켜 세우고 나 또한 일으켜 세워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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