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을 여는 코스모스의 설렘과 아련함
베란다의 씨앗이 보여준 회복탄력성
꽃씨 같은 마침표, 삶을 비워내는 지혜 전해
고홍곤 야생화 사진작가2025-09-15 16:33:04
▲ 코스모스 하늘하늘 춤추는 그 눈시린 창공 저 꽃밭에 누워 나도 꽃이고 싶은 날 바람이 살랑이는 계절, 코스모스는 가장 먼저 가을의 소식을 전해준다. 하늘거리는 여린 몸짓으로 길가에 피어난 코스모스를 보고 있으면, 사람들은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센티해지고 저 멀리 어딘가로 떠나고 싶은 간절한 그리움에 젖어든다. '소녀의 순정'과 '순애보'라는 꽃말을 지닌 코스모스의 부드러운 분홍빛 물결을 따라, 알 수 없는 설렘과 아련함이 마음을 가득 채운다. 코스모스가 불러온 감정은 단순한 계절의 변화를 넘어, 우리를 깊은 사색으로 이끌어 간다. 그 고요한 존재는 때로 잊고 지냈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게 하는 힘을 가진다.
▲ 그 고운 얼굴들 부르면 누군가 나올 것 같은 이 가을… 이처럼 보편적인 아름다움을 가진 코스모스에게는 나만의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8월 초 여름, 다이소에서 산 코스모스 씨앗을 9층 아파트 베란다에 심자 하루 만에 싹이 돋아났다. 너무 많은 새싹에 일부를 골라 아파트 1층 화단에 옮겨 심었지만, 한여름 뙤약볕에 새싹들은 금세 시들어버렸다. 나는 노심초사하며 매일 아침저녁으로 물을 주며 정성껏 보살폈고, 일주일쯤 지나자 마침내 시들음이 멈추고 땅에 뿌리를 내리는 것을 보며, 마치 힘든 시간을 이겨낸 나를 보는 듯 가슴 벅찬 기쁨을 느꼈다.
한편, 베란다에 남았던 코스모스들은 채광과 통풍이 원활하지 않아 결국 웃자라 꽃을 피우지 못하고 말았다. 같은 씨앗이었지만, 혹독한 환경을 이겨낸 코스모스와 그렇지 못한 코스모스의 운명은 나에게 작은 깨달음을 안겨주었다.
▲어제를 살다 가신, 오늘을 살아가는 아득한 시간들 새벽녘 찬연하게 빛날 때 꽃은 지기에 더욱 아름다운 것임을
매일 인사를 나누던 그 작은 코스모스들은 한 달이 훌쩍 지난 10월 중순, 그토록 기다리던 꽃 한 송이를 피워주었다. 눈물이 날 만큼 반가웠고, 이어진 여러 송이의 꽃들은 나에게 더 큰 기쁨을 안겨주었다. 11월 중순에 코스모스가 맺은 씨앗을 받아내며 나는 생명의 순환을 온몸으로 느꼈다. 처음 심었던 여섯 군데 중 세 군데만이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웠지만, 그 작은 성공은 나에게 커다란 깨달음을 주었다. 내가 힘든 순간에 물을 주었던 그 코스모스들이 이제는 내가 힘들 때마다 그들을 떠올리면 언제나 내 머리 위에 시원한 물을 부어주듯,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과 위로를 얻는 것 같았다. 이 특별한 교감은 나에게 회복 탄력성의 의미를 깊이 새겨주었다.
▲ 살아가며 기적을 바라기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성전처럼 지키는 일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리 그렇다면 들판의 코스모스가 이토록 아름답게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이 땅을 살다 간 수많은 이들의 찬란하고 아름다웠던 꿈들이 저녁노을 하늘에 흩뿌려져 찬연하게 빛나고, 그 꿈의 조각들이 코스모스 꽃잎에 물든 것이라고 말이다. 코스모스는 우리에게 삶을 정리하고 비워내면서 아름답게 마무리할 준비를 하라는 메시지를 전해준다. 마치 꽃씨를 닮은 마침표처럼,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고 남은 날들을 더욱 아름답게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하게 만든다. 코스모스의 한들거리는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계절, 누군가 보고 싶어지는 이 가을이 당신에게 따뜻한 위로와 깊은 사색의 시간을 선물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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