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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손초, 생명의 번식과 나눔의 서정시 [고홍곤의 야생화 노트]

'만손초'의 생명력과 나눔의 미학
고홍곤 야생화 사진작가 2025-11-24 19:17:06
▲땅에 닿는 순간  
또 하나의 푸른 우주가 되리니ᆢ


 

만손초는 그 이름처럼 '수많은 자손'을 상징하는 경이로운 생명체이다. 잎 가장자리에 맺히는 수많은 작은 싹들은 이 식물이 가진 강렬한 생명력과 무한한 번식력을 웅변한다. 꽃말은 '자손 번성', '사업 번창', '설레임'이다. 25년 동안 꽃을 가꿔온 나에게 만손초는 곧 생명 그 자체였다. 그러나 한때 그 왕성함은 나에게 오히려 부담이었다.

 

'비움의 미학'과 '정리의 상쾌함'을 추구하며 쓰레기통을 자주 비우고 내 주위의 물건을 최대한 줄여가는 나의 루틴은 단순한 행위를 넘어, 마음속 잡념과 미결 과제까지 빨아들이는 '마음의 진공 청소기'와 같았다. 나의 일상에서, 감당하기 어려운 만손초의 번식은 통제 불능의 영역이었다. 개체 수가 불어날 때마다 어쩔 수 없이 일부를 버려야 했고, 그 순간 생명을 폐기하는 듯한 죄책감은 나의 마음 한구석을 무겁게 짓눌렀다.

 

죄책감과 정리 정돈 사이에서 고뇌하던 나에게, 만손초는 스스로 해답을 제시했다. 버림으로써 생기는 죄책감을 나눔이라는 새로운 가치로 대체하는 것이다. 나는 만손초를 더 이상 '정리해야 할 물건'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해야 할 생명력'으로 보기 시작했다.

이 깨달음은 10년 전, 인생의 가장 힘들었던 시기를 겪던 나에게 만손초가 건넸던 위로와 맞닿아 있다. 무너질 것만 같던 그때, 사무실 한켠에서 만손초의 잎사귀마다 돋아나는 작은 새끼들은 '포기하지 말라'고 말해주는 듯했다. 나는 그 강인한 생명력으로 버텨낼 수 있었고, 만손초의 클론을 나누는 행위는 이제 그 받은 힘을 세상에 되돌려주는 의식이다.

 

잘 키워낸 만손초를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줄 때, 나의 마음은 소유의 짐에서 벗어나 물리적 가벼움을 얻는다. 강인한 생명력을 통해 힘든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스스로 긍정의 마음을 가지게 하는 일이 일상에서 실천되는 과정이다.

만손초의 나눔은 놀라운 기쁨으로 이어졌다. 파킨슨병을 앓으면서도 꽃그림을 누구보다 잘 그리시는 원주에 계신 작가님께 만손초 클론을 보냈을 때의 일이다. 얼마 뒤, 작가님으로부터 SNS를 통해 작고 여렸던 클론이 훌쩍 자란 사진이 도착했다. 만손초의 생명력이 나에게서 시작되어, 이제는 또 다른 누군가의 삶에 희망의 싹을 틔우고 있다는 사실에 감격한다. 이처럼 우리가 식물에게 의미를 부여하고 정성을 쏟을 때, 그 식물은 우리에게 새로운 희망과 힘을 주며 생명력의 기운을 퍼뜨리는 것이다.

 

또한, 어느 회사 대표님은 사무실에 만손초를 잘 번식시켜 곳곳에서 볼 수 있게 하셨는데, 만손초를 대하는 태도는 곧 삶을 대하는 태도이며 그것이 성공적인 사업 수완의 근원이었다.

만손초를 통한 나눔의 미학 외에도, 나에게 기쁨을 주는 또 다른 도전이 있다. 바로 가을 들판에서 나팔꽃 씨를 받아 한 계절 앞서 씨를 뿌리는 작업이다. 씨앗을 뿌리는 행위는 미래의 기쁨을 현재로 당겨오는 작업이다. 아직 꽃은 피지 않지만, '피울 수 있을 것 같다'는 기대와 희망을 심음으로써 현재 기분을 즉각적으로 좋게 한다. 추위를 이겨내고 베란다에서 3-4월에 작은 키로 피어난 나팔꽃의 기적은 나에게 노력의 결과이자, 우주의 기운과 초연결된 생명력의 강렬한 증명이었다.

 

만손초의 나눔과 나팔꽃의 개화가 내 삶에 활력을 주듯, 나는 정리된 마음과 환경을 바탕으로 만손초를 정성껏 가꿔 5년 후 만손초 꽃을 피워낼 꿈을 꾼다. 만손초의 끈질긴 생명력과 매일 아침 피어나며 삶을 노래하는 나팔꽃의 모습은 나의 일상이 곧 생명력에 대한 경외와 감사이며, 이 모든 기쁨은 꽃을 통해 우주와 초연결되는 삶의 깊은 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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