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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저항을 예술로 승화하다… 자파르 파나히,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고은희 기자 2025-05-25 16:21:31
▲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자파르 파나히 감독/ 사진=칸국제영화제 공식 홈페이지. AFP

이란의 반체제 영화감독 자파르 파나히가 제78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최고상인 황금종려상의 주인공이 됐다. 현지시간 24일 프랑스 남부 휴양도시 칸에서 열린 폐막식에서 파나히 감독의 신작 'It Was Just An Accident'가 황금종려상의 영예를 안았다.

영화는 과거 정치범으로 수감됐던 남자가 감옥에서 자신을 괴롭혔던 경찰과 닮은 인물을 다시 마주하면서 벌어지는 갈등과 용서의 문제를 탐구한다.

이 작품은 파나히 감독이 지난 2023년 석방 이후 처음 만든 장편영화로, 감옥에서 동료 수감자들에게 직접 들은 경험담을 바탕으로 쓰였다. 파나히는 “감옥에서 느낀 새로운 책임감 속에서 이 이야기들로 영감을 얻었다”고 밝혔다.

이 영화는 정부 감시를 피해 비밀리에 촬영됐으며, 현실 정치의 폭력성과 그에 대한 예술적 저항이라는 파나히 특유의 메시지를 견고하게 담고 있다

그동안 죽음의 위협을 무릅쓰고 이란의 독재를 비판하는 영화를 찍어온 파나히 감독은 이번 수상으로 파나히 감독은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2000년 써클), 베를린영화제 황금곰상(2015년 택시)에 이어 칸의 황금종려상까지 거머쥐며 세계 3대 영화제 최고상을 모두 석권한 역대 다섯 번째 감독으로 기록됐다. 그는 수상 소감에서 “지금 이란에 가장 필요한 것은 자유”라며 “예술은 어둠을 희망으로 바꾸는 힘을 지닌다”고 말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프랑스 배우 쥘리에트 비노쉬는 “예술은 우리의 살아 있는 가장 소중한 내면을 자극하는 창조적 에너지”라며 파나히 감독의 용기와 작품 세계에 찬사를 보냈다.

2등 상인 심사위원대상은 요아킴 트리에르 감독의 'Sentimental Value'가 차지했다. 소원한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려는 자매의 감정선을 그린 이 작품은 섬세한 연출로 관객과 평단의 호평을 동시에 이끌어냈다.

심사위원상은 실종된 딸을 찾아 나선 아버지의 이야기 'Sirat'(올리비에 라시 감독)과 여러 세대에 걸친 독일 가족사를 다룬 'Sound of Falling'(마샤 실린슈키 감독)이 공동 수상했다.

감독상은 브라질의 클레베르 멘돈사 필류 감독에게 돌아갔다. 그는 1970년대 부패한 정계를 배경으로 한 정치 스릴러 'The Secret Agent'로 날카로운 연출력을 인정받았다. 이 영화의 주연 배우 와그너 모라는 남우주연상까지 함께 수상하며 2관왕의 기쁨을 누렸다.

여우주연상은 이번이 영화 데뷔작인 23세 프랑스 신예 나디아 멜리티에게 돌아갔다. 'The Little Sister'에서 17세 소녀가 알제리계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을 섬세하게 연기해 주목받았다.

각본상은 벨기에의 거장 형제 감독 장 피에르 다르덴과 뤼크 다르덴이 공동 연출한 'The Young Mother's Home'에 수여됐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특유의 통찰력이 녹아든 작품으로, 전통적 가족 구조와 여성의 권리를 날카롭게 묘사했다.

올해 경쟁 부문에는 한국 영화가 진출하지 못했지만, 심사위원단에는 홍상수 감독이 포함되어 화제를 모았다. 그는 한국인으로는 여섯 번째로 칸 경쟁 부문 심사를 맡았다. 이 외에도 할리우드 배우 할리 베리, 인도 감독 파얄 카파디아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단은 전 세계 다양한 시선을 아우르는 수상작들을 선정했다.

이번 영화제는 정치와 예술, 인권과 용서, 세대 간의 화해 등 다양한 주제를 아우르는 작품들로 채워졌으며, 그 중심에는 정치적 탄압을 딛고 영화로 목소리를 낸 자파르 파나히 감독이 있었다. 이번 신작 공개로 그는 귀국하면 다시 기소될 위험이 높다. 그럼에도 파나히 감독은 “영화제가 끝나면 곧바로 테헤란으로 돌아가 다음 작품에 대한 고민을 하겠다”고 밝혔다.그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단순한 예술적 승리를 넘어 이란 사회에 보내는 연대의 메시지로 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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