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일 오전 부산지법 352호 법정 앞에서 자신의 재심 첫 공판을 기다리고 있는 최말자씨. / 사진=연합뉴스
1964년, 한 18세 소녀는 자신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었다는 이유로 유죄를 선고받고 옥살이를 해야 했다. 그리고 61년이 지난 2025년 7월 23일, 그 억울한 시간이 법정에서 바로잡히기 시작했다.
부산지방법원 형사5부(부장판사 김현순)는 23일 중상해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았던 최말자 씨(79)의 재심 첫 공판에서 검찰이 무죄를 구형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무죄 선고가 확실시되는 순간이었다.
▶ “성폭행 피해자인 내가 가해자였다”…사건의 전말 1964년 5월, 만 18세였던 최말자 씨는 길을 묻던 21세의 남성 노 모 씨를 도와주던 중,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 몸을 겨우 피하며 그가 억지로 입맞춤을 시도하자 최 씨는 그의 혀를 물었고, 1.5cm 가량이 절단됐다.
이후 피해자였던 최 씨는 중상해 혐의로 구속기소됐고, 징역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형을 선고받았다. 당시 최 씨는 6개월간 구치소에 수감됐다. 반면 성폭력 가해자인 노 씨는 특수협박·주거침입 혐의만 적용돼 더 가벼운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형을 받았다.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은 피해자에게 가혹했고, 가해자에게는 관대했다.
▶ 56년 만에 꺼낸 ‘미투’…방통대 수업 중 떠올린 억울함 최 씨가 재심을 결심하게 된 건 2018년. 60세가 넘어 입학한 방송통신대에서 ‘성, 사랑, 사회’ 수업을 들으며 과거의 트라우마를 떠올렸고, 친구의 권유로 한국여성의전화 문을 두드렸다. 그녀는 “그날을 잊을 수 없었다”고 했다.
2019년 재심을 청구했지만 1·2심에서 모두 기각됐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대법원에 재항고했고, 2023년 12월, 대법원이 사건을 파기환송하면서 드디어 재심의 문이 열렸다.
이날 부산지법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최 씨는 “죄인으로 살아온 삶에서 이제 희망이 생겼다”며 “후손들은 성폭력 없는 세상에서 인권을 지키고 행복하게 살아가기를 바란다”고 울먹였다.
▶ 검찰도 인정한 사법부의 ‘과오’…사실상 무죄 선고 예고 이날 재판에서 검찰은 “무죄를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피고인에게 불리한 증거는 없고, 성폭행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부상이라는 정황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이로써 최 씨는 오는 선고기일에 사실상 무죄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녀의 61년간의 억울함이 사법부에 의해 마침내 해소되는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 왜 지금 이 사건이 중요한가? 최말자 씨 사건은 단순한 개인의 재심을 넘어, 성폭력 피해자의 방어권, 여성 인권, 사법부의 책임성을 되짚는 상징적 판례로 기록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이 사건을 “사법의 역사상 가장 부끄러운 판결 중 하나”라고 꼽는다.
1995년 발간된 『법원사』에는 이 사건이 ‘강제 키스 혀 절단 사건’으로 소개되었고, 형법 교과서에는 “정당방위가 인정되지 않은 대표적 사례”로 기록돼 있다.
한국여성의전화는 “이 사건을 통해 성폭력 피해자의 정당한 저항이 정당방위로 인정받는 사회, 피해자가 가해자로 몰리지 않는 법적 시스템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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