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은 세 번의 도전 끝에 대한민국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그의 삶은 절망의 밑바닥에서 시작해 대한민국 최고 권력의 정점에 오르는 여정이었다.
1963년 경북 안동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그는 일곱 남매 중 다섯째였다.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가족과 함께 경기 성남의 공단 지역으로 이주했고 중학교 진학 대신 공장에 위장 취업해 소년공으로 일했다. 공장에서 그는 가죽 프레스에 왼팔이 눌리는 사고를 당해 장애 6급 판정을 받았고, 이로 인해 병역을 면제받았다. 가난과 고통 속에서 두 차례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으나, 약사들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공장 간부가 고졸이라는 사실에 자극받아 검정고시를 준비한 그는, 중졸과 고졸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중앙대학교 법대에 전액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1986년 사법시험에 합격했지만, 판검사가 아닌 인권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다. 성남에서 변호사로 활동하며 노동상담소장을 맡고, 시립병원 설립 운동을 주도하는 등 시민운동에 헌신했다.
2005년 열린우리당에 입당하며 정치에 입문한 그는, 2006년 성남시장 선거와 2008년 총선에서 연이어 낙선했다. 그러나 2010년 세 번째 도전 끝에 성남시장에 당선되었고, 2014년 재선에 성공했다. 그는 청년 배당, 무상 교복, 무상 산후조리원 등 '3대 무상 복지 정책'을 추진하며 주목받았다.
2016년 박근혜 정부의 지방재정 운용 방식에 반기를 들며 단식 농성을 벌였고, 이를 계기로 전국적 인지도를 얻었다. 2017년 제19대 대선에서 당내 경선에 도전해 3위를 기록하며 정치적 입지를 다졌다. 2018년 경기지사에 당선되며 정치적 체급을 키웠다.
그러나 경기지사 시절 '친형 강제 입원' 관련 허위사실 공표 혐의로 기소되어 2019년 2심에서 당선 무효형을 선고받았다. 이듬해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파기환송과 최종 무죄 확정으로 정치적 생명을 이어갔다.
2021년 대선 경선에서 이낙연 후보와 접전 끝에 승리해 2022년 제20대 대선에 나섰지만,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이 발목을 잡아 윤석열 후보에게 0.73%포인트 차이로 패배했다. 이후 인천 계양을 국회의원 보궐선거에 당선되었고, 2023년 8월 민주당 당대표에 선출되었다.
당대표 취임 후 윤석열 정부와의 갈등이 심화되었고, 2023년 8월 단식 투쟁에 나섰다. 검찰은 두 차례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모두 기각되었다. 2024년 1월 부산 가덕도 신공항 부지 방문 중 흉기에 목을 찔리는 습격을 당했다.
2024년 4월 총선에서 민주당이 171석을 차지하며 압승했고, 이재명 대표는 8월 당대표 연임에 성공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와 헌법재판소의 파면 결정으로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이재명 후보는 당내 경선에서 90% 가까운 득표율로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
대선을 한 달 앞둔 5월 1일 대법원이 공직선거법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 환송하며 사법 리스크가 재부각되었으나, 공판 기일이 대선 이후로 미뤄지며 대세론을 굳혔다. 그리고 2025년 6월 3일 실시된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이재명은 대한민국의 제 21대 대통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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