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했지만, 정작 가계가 체감할 수 있는 주택담보대출(주담대) 금리는 좀처럼 떨어지지 않고 있다. 주담대 시장의 대부분이 고정금리 중심으로 재편돼 기준금리 인하의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다.

2일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4월 예금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중 고정금리 대출 비중은 신규취급액 기준 89.5%에 달했다. 이는 10건 중 9건이 고정금리 상품으로 실행되고 있다는 뜻이다.
이 같은 경향은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계속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한국은행이 금리를 내리기 시작하면서 고정금리 비중은 잠시 하락하는 듯 보였으나, 올해 들어 다시 90%에 육박하고 있다. 특히 4대 시중은행의 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연 3.37∼5.52% 수준으로, 같은 기간 변동형 금리(연 3.88∼5.53%)보다도 하단과 상단 모두 낮은 상황이다.
보통 고정금리는 장기물 금리와 연동돼 변동금리보다 높지만, 최근엔 그 반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이는 ▲금융당국이 은행권에 고정금리 확대를 유도한 점 ▲금리 구조상 고정금리가 DSR 규제에서 유리하다는 점 ▲시장 불확실성에 따른 차주의 선호가 겹친 결과로 분석된다.
실제로 금융감독원은 지난해 은행들에 자체 고정금리 비율 목표치를 30% 이상으로 설정하라는 행정지도를 내린 바 있으며,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산정 시 고정금리가 높은 한도를 받을 수 있다는 구조 역시 고정금리 선택을 부추기고 있다.
이날 한국은행이 주최한 ‘경제 구조 변화와 통화정책’ 국제 콘퍼런스에서도 기준금리 조정의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됐다. 찰스 에반스 전 시카고 연은 총재는 “금리라는 하나의 채널만으로 물가와 고용, 금융안정까지 달성하는 것은 구조적으로 도전적인 과제”라며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모든 물가 영역에 대응하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에반스 전 총재는 팬데믹 이후 소비자들이 특정 품목의 가격 급등(예: 계란, 중고차)을 통화정책 실패로 오인하는 ‘화폐 환상(money illusion)’이 강해지고 있다고도 지적했다. 그는 “통화당국은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목표를 무리하게 설정하지 말고, 시장과의 명확하고 지속적인 소통에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로버트 배로 하버드대 교수 역시 이날 발표한 논문에서 “팬데믹 시기의 재정지출 확대가 인플레이션의 주요 원인이 되었으며, 그 영향이 여전히 정책 판단에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기준금리 인하가 이어지더라도 고정금리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현 상황에서는 대출자들이 금리 하락의 혜택을 체감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지적한다. 금융 전문가들은 “현재로서는 고정금리 대출을 택한 뒤, 향후 시장 상황에 따라 변동형으로 갈아타는 전략이 유리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결국 한은의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가계 금융 여건에 체감적 변화가 일어나기까지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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