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5월까지 네 차례 단행한 기준금리 인하(총 1%포인트)가 아직까지는 경제 성장률 제고 효과로 이어지지 않았다는 분석을 내놨다. 반면 주택시장, 특히 서울 아파트 가격에는 뚜렷한 자극 효과가 나타난 것으로 평가됐다.
한은은 11일 발표한 ‘통화신용정책 보고서’에서 “지난해부터 100bp 인하를 통해 금융여건이 완화됐지만, 대내외 불확실성으로 소비와 투자가 지연되며 효과가 지체됐다”고 밝혔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불확실성이 큰 시기의 금리 변동은 국내총생산(GDP)·소비·투자에 미치는 효과가 평상시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다만 파급 효과가 통상 2~3분기 이후 나타나는 점을 고려할 때, 하반기부터 성장률 개선이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했다. 한은은 이번 금리 인하가 향후 1년간 성장률을 약 0.27%포인트 높일 것으로 추산했다.
반면 주택시장에서는 이미 금리 인하의 영향이 뚜렷하게 포착됐다. 보고서는 올 상반기 서울 아파트값 상승분의 26%가 금리 인하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했다. 나머지 74%는 공급 부족, 규제 완화, 기대 심리 등이 원인으로 꼽혔다. 박종우 한은 부총재보는 “6·27 부동산 대책 이후 상승세가 다소 진정됐으나, 서울 핵심 지역의 가격 수준은 여전히 높다”며 “9·7 공급 대책이 차질 없이 이행되는지를 보면서 주택시장 안정 여부를 판단할 것”이라고 말했다.
가계와 기업의 미시적 효과를 보면, 금리 인하로 이자 부담은 줄었지만 소비·투자 확대는 제한적이었다. 가계는 이자 비용이 줄었으나 저소득층의 소비 여력 악화로 소비 증대 효과가 미약했고, 기업 역시 대기업·제조업을 중심으로 투자가 회복된 반면 중소기업·서비스업은 여전히 부진했다.
한은은 추가 금리 인하 여부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했다. 이수형 금통위원은 “향후 금리 결정은 성장 흐름뿐만 아니라 주택시장과 가계부채 안정 여부를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완화적 통화정책이 금융 불균형을 심화시켜 오히려 주거비 부담을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한국은행이 경기 부양과 부동산 안정 사이에서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고 평가한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통화정책을 특정 지역 집값 억제 수단으로 활용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며 “성장률 둔화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금리정책을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결국 한은의 선택은 서울 집값과 가계부채 안정 여부에 달렸다. 성장 둔화를 완충하기 위한 금리 인하가 필요하지만, 부동산 시장의 과열을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성장은 더디고 집값은 빠른’ 현실 속에서, 한국은행의 고민은 한층 깊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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